2016년 5월 23일 월요일

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살아만 있어줘 [조창인]생의 끝자락에서 꿈과 사랑을 찾아가다우리의 2000년대를 강타했던 소설 ‘가시고기’와 ‘등대지기’를 기억하는가? 갈수록 사는 것이 팍팍해지는 요즘, 조창인, 그가 들고 온 ‘살아만 있어줘’는 우리의 메마른 감성을 촉촉이 적셔준다. 언제나 가장 처절하고 절절한 사랑을 다뤄 왔던 그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가 추구하는 사랑이 여지없이 빛이 난다. 자살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들고 사랑을 풀어내기 쉽지 않을 터다. 그러나 동시에 치유와 극복의 의미를 더해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것과 또 마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살아오는 동안 웃었던 날보다 불행과 실의에 빠져 지냈던 시간이 더욱 많았던 주인공 해나는 꿈과 사랑을 잃은 채로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그런 그녀에 돌아가신 어머니의 옛 친구라는 은재가 나타나고 죽음을 시도했던 소녀 해나와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은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용서와 화해만이 절망에 빠져 고통받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 주인공을 통해 말한다. 살아가는 것이 고통이고 그 고통에 겨워 자기 스스로 생을 끊으려 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되풀이 될 수 없는 순간이며 생의 가능성을 영원히 끊어 버리는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절망스러울지라도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찾는 것, 이것이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이다. 기나긴 방황과 좌절의 끝에 다시 찾는 꿈과 사랑. 이 책은 당신에게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 줄 것이다.1. 하루하루 살아가기 힘겨울 때마다 내 간절한 외침을 기억해! 살. 아. 만. 있. 어. 줘!-기나긴 방황과 좌절의 끝에서 다시 찾은 꿈과 사랑! -[가시고기], [등대지기]의 조창인 신작 장편소설 [살아만 있어줘] 출간![살아만 있어줘]는 [가시고기], [등대지기]의 작가 조창인이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장편소설이다. 자기희생적인 아빠의 부성애를 담은 [가시고기], 외딴섬 등대지기와 어머니의 화해를 그린 [등대지기], 부모를 잃은 한 소년의 눈물겨운 삶을 그린 [길], 머나먼 길을 돌아 다시 사랑을 찾는 부부 이야기를 그린 [아내]에 이어 [살아만 있어줘]는 긴 방황과 좌절 끝에 잃어버린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2000년, 새로운 밀레니엄 벽두에 출간된 조창인 장편소설 [가시고기]는 출판 역사상 전무후무한 각종 기록을 남기며 그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우뚝 섰다. 문화관광부가 한국출판연구소에 의뢰해 실시한 ‘2004년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서 [가시고기]는 가장 기억에 남는 도서로 선정되었고, 작가 선호도 조사에서도 초등학생부터 성인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지지를 받아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선정되었다. 교문문고 42주 연속 1위, YES24 다시 읽고 싶은 책 7위(2006년), MBC 느낌표 조사 가장 읽고 싶은 소설 1위(2001년), EBS 조사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16위(2002년) 등은 [가시고기]가 이룬 눈부신 성과였다. [가시고기]는 일본에서도 출간돼 10만 부가 팔려 나갔으며 NHK방송국에서 드라마로 제작돼 큰 관심을 끌기도 했다. 그밖에도 중국, 대만, 태국, 베트남 등지에서도 출간돼 소설 한류열풍을 주도했다. 이미 연극, 뮤지컬, 드라마로 선을 보였으며 영화로도 곧 나올 예정이다. 요즘도 각 학교에서 독후감 과제로 선정돼 방학 동안 판매가 부쩍 신장되는 현상을 빚기도 한다. [가시고기] 200만 부, [등대지기] 80만 부를 비롯해 다수의 책이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살아만 있어줘]는 조창인 감동소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인 동시에 치유와 극복의 의미를 더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그 어떤 소설을 쓸 때보다 산고가 컸다고 한다.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집필에 따르는 중압감이 만만치 않았던 것. 조창인 소설의 주제는 언제나 ‘사랑’이다. 사랑을 빼고는 조창인 소설을 생각할 수 없다. 조창인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이 사랑을 이루는 방식은 비장하다 못해 처절해 보이기도 한다. 골수암 환자인 아들의 회복을 위해 장기를 팔아야 하는 아빠 이야기를 다룬 [가시고기],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다룬 [등대지기]에서 보듯 조창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랑하는 방식은 자기희생적이다. [살아만 있어줘]의 은재 역시 사랑을 이루기 위한 각오가 자못 비장하다. 20년 만에 조우한 딸, 얼마 남지 않은 생의 나날들을 딸을 살리는 데 쓰고자 한다. 마치 작가는 목숨을 걸 각오 없이 시작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2. 죽음은 결코 되풀이할 수 없는 순간,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순간이다! 꿈과 사랑을 잃은 사람에게 생은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사람, 세상에 피붙이 하나 남아 있지 않은 외톨박이에게 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이 소설의 주인공 해나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일찍이 아빠를 잃고, 얼마 전 엄마까지 세상을 떠나갔다. 해나가 20년 동안 살아온 날들 중에는 밝게 웃은 날보다 실의와 절망에 빠져 방황한 날이 더 많다. 웃음을 과거의 저편 어디엔가 놓아두고 온 사람처럼 늘 어두운 표정을 지었던 엄마 인희, 가족에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베풀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괴로움이 묻어났던 아빠 기호.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늘 불만스럽고 초조했던 해나. 셋이 함께 신나게 웃어본 기억이라곤 없는 가족이었다. 그나마 이제 아빠 엄마는 모두 세상을 떠나고, 해나 홀로 남았다. 혹독한 시련이 앞을 가로막을지라도 힘껏 살아가고자 한다면 못 살아낼 것도 없겠지만 해나에게 생은 청천벽력과도 같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통인 해나에게 내일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일 뿐이다. 이제 해나에게 죽음은 필수가 되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고민 끝에 성산대교에서 뛰어내리지만 죽음 또한 맘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몸을 크게 다쳤을 뿐 생명이 다하지 않은 해나는 병원에서 혹독한 재활의 시간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은재. 그는 지난 20년 동안 소설을 쓰며 살아온 작가이다. 20년 전 잃어버린 운명의 사랑 인희를 여전히 그리워하며 소설 쓰기로 생을 위무해 가는 사람. 여러 편의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지만 인희가 떠난 세상은 그에게 아무런 희망도 없다. 자살을 선택했던 해나와 말기 암으로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은재가 만난다. 첫사랑 인희가 죽기 전에 해나를 부탁했던 것, 해나는 사실 은재의 아이였던 것이다. 은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살아 있는 동안 해나의 꿈과 살아야 할 의미를 찾아주고 싶은데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해나가 지난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이 자못 깊기 때문이다. 해나와 은재가 서로 티격태격하며 갈등하는 동안 죽음의 시간은 점점 가까이 다가선다. 조창인 소설은 아무리 감정이 메마른 사람일지라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생생한 감동이 녹아들어 있다. 핵가족화, 개인주의화되어 가는 사회, 전통적 가족의 의미가 붕괴되어 가는 사회,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이 소설은 사랑과 희생, 용서와 화해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살아만 있어줘]는 ‘죽음’이란 공통분모를 가진 은재와 해나가 시련과 상처를 극복하고 꿈과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생의 끝자락에서 만난 두 사람은 수없이 많은 갈등과 시련을 겪지만 차츰 용서와 화해의 바탕 위에서 어두운 그림자를 거두어내고 희망을 향해 나아간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이다. 자살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자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살아만 있어줘]는 제목처럼 생명의 소중한 의미를 각인시키는 소설이고, 좌절을 이겨내고 미래의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은 용서와 화해만이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신음하는 사람들을 진정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은재와 해나를 통해 절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죽음이란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 주어진 삶의 마지막까지 참고 견뎌내며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일이 고통인 생이 있다. 하루하루 견디기 힘들 만큼 괴로워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죽음은 결코 되풀이할 수 없는 순간이며,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순간이다. 그러하기에 생이 아무리 고통이고 절망일지라도 마침표가 아닌 쉼표를 찾아내야 하는 것.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생에 마침표를 찍는다는 건 수없이 주어질지도 모를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능히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서둘러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화해와 용서 또한 말처럼 쉽지 않다.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다가서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다. 상대보다 먼저 이편의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이는 일이다. 상대가 가슴을 활짝 열어 보일 때까지 참을성을 갖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다. 이 소설의 은재는 해나가 진정으로 삶을 받아들이기까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사람을 되살리는 것만큼 숭고한 일이 어디 있으랴. 생의 막바지에 다다른 은재는 마지막 남은 열정을 해나의 희망을 위해 쏟아붓는다. 은재가 지핀 희망의 불씨는 해나가 살아가는 동안 마음속의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해나는 하루하루 살아내기 힘들 때마다 은재가 남긴 사랑의 불씨를 되살리며 용기를 내게 될 것이다. 3. 너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줄 수 있다면…….[살아만 있어줘]줄거리 요약-나, 이제, 죽습니다.해나는 성산대교 다리 난간을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무슨 이유로 죽으려고 하는 것일까? 단호함이 묻어나는 얼굴에는 일말의 미련도 보이지 않는다. 해나는 마지막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깊은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병원이다. 비장한 각오로 결행했던 자살이지만 온몸을 바늘로 찌를 듯한 통증만이 오롯이 남아 있을 뿐이다.은재는 시한부 말기 암 환자로 죽음을 향해 육체를 맡긴 채 서서히 삶에서 멀어지고 있다. 죽어가는 그에게 옛 여인을 통해 알게 된 딸 해나의 존재. 하지만 그가 해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없다.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던 은재에게 해나가 다리 위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은재는 이미 놓아버렸던 삶의 끈을 붙잡기 위해 재입원을 결심한다. 마지막 남은 생의 불꽃을 해나를 위해 태우겠다는 각오와 함께.은재는 기회가 오면 다시 죽으리라 다짐하는 해나 앞에 나타난다. 해나는 주변에서 얼쩡거리는 은재가 귀찮기만 하다. 마치 아빠처럼 시시콜콜 어린아이 취급이다. 멀리해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사사건건 부딪히다 보니 어느새 서로 말문이 터져 잠시 보이지 않으면 소식이 궁금해진다. 해나는 정신치료와 물리치료를 병행하지만 여전히 삶에 미련이 없다. 기회가 오면 다량의 신경안정제를 먹고 삶을 끝낼 생각이다. 정신과 치료를 담당하는 도토리 선생도 해나를 살리기 위한 치료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처음은 미약했지만 차츰 치료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도토리 선생은 은재와도 부쩍 친해져 자주 해나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해나는 은재가 얼굴 없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돌아가신 부모님의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해나가 간호사에게 흘린 말 때문에 은재의 정체가 언론에 노출된다. 해나는 자기 때문에 곤란에 처한 은재에게 미안함을 느낀다. 은재의 담당 편집자인 오찬미를 통해 언론이 조용해질 동안 은재와 함께 병원을 나가 바람을 쐬고 오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는다. 해나로서는 내키지 않는 일이었지만 자신의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은재와의 여행에 동참하기로 한다.해나에게 자신의 고향을 보여주고 싶었던 은재. 둘은 은재의 고향인 외우도로 떠난다. 둘은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해나의 부모와 은재가 얽힌 이야기들이다. 은재는 끝내 자신이 아버지라는 말을 할 수 없다. 이미 해나의 머리에 깊숙이 박힌 아버지는 그가 아니라 기호이기 때문이다. 둘의 관계는 밀착되었다가 이완되기를 반복한다.두 사람은 여행 중 외우도에서 수애라는 아이를 만난다. 은재와 해나는 엄마를 찾아 외우도를 찾아왔다는 수애와 동행한다. 은재는 수애의 엄마를 찾아주기 위해 몸을 돌보지 않고 돌아친다. 힘겹게 찾아낸 수애의 엄마는 딸을 만나기를 거부한다. 병원으로부터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는 연락이 온다. 은재도 수애도 보이지 않는다. 겨우 은재를 찾아 간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한 해나는 연락이 되지 않는 수애가 전날 절벽 아래를 망연히 바라보던 모습을 떠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다.은재는 수애를 찾아 절벽으로 향한다. 절벽에는 수애가 가지런히 놓아둔 운동화만이 보일 뿐이다. 은재는 절벽 아래로 수애를 찾아 내려간다. 은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절벽 아래로 내려가지만 기력이 다해 차츰 의식이 희미해져 가는데…….죽음은 마침표일까? 쉼표, 혹은 느낌표일까? 아니면 영원한 물음표?모르겠다. 그저 안개 속을 걷는 일이라고 해두자. 삶도, 죽음 역시 안개에 뒤덮인 미지의 길이다. 부활이든 소멸이든, 다른 세계로의 이동이든 뭐가 대수일까.지쳤다. 몹시 지쳤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순례자가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물을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지친 삶을 우격다짐으로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넌덜머리가 났다. 지긋지긋한 오늘의 끝을 볼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은가.(/ p.9)어느 날은 장려한 황혼이 펼쳐졌다. 어느 날은 비가 내리거나 온통 구름이었다. 풍경과는 무관하게 그저 오래된 습관의 명령을 좇는 양, 몸에 밴 루틴을 놓치지 않으려는 운동선수처럼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열중한 시기가 있었다. 나그네로 배낭을 둘러매고 떠돌며 마주친 광경들을 카메라에 담곤 했다. 세상을 떠돌고 싶은 건가, 사진을 찍으려는 열망을 앞세우고 있는 건가. 의문이 깊어진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앞이 뒤가 되고, 사소한 것이 중요한 무엇을 앞지른다? 그건 그가 살아야 할 인생이 아니었다.그는 오찬미를 통해 자신의 카메라를 그 아이에게 건넸었다. 받지 않았다.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사진 찍는 건 질색이라고 했다. 그 아이는 줄곧 다리의 왼쪽 인도를 택해 걸었다. 그는 오른쪽에서 차도를 사이에 두고 따르곤 했다. 굳이 의식하지 않는 이상 눈에 띌 거리가 아니었다. 숙명적인 간격.그리 불러도 좋았다. 아주 멀어질 수는 없었다. 지나치게 가까워져도 안 되었다. 늘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살아가야 할 숙명이었다.(/ pp.18~19)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그는 셔츠의 깃을 세우고 차의 진행 방향을 따라 걸었다. 열 명 남짓의 사람들이 난간에 배를 붙인 채 강을 굽어보고 있었다. 오찬미의 말대로 누군가 투신을 한 모양이었다.죽을 용기의 절반만 사는 데 쓰면, 못할 게 어딨어……. 남은 사람 생각도 해야지, 모두 제 속만 편하겠다는 이기적인 수작이라고…….건넛마을 불구경처럼 바라보는 건 그렇다고 치자. 뭐랄 수 없었다. 하지만 죽은 자의 결정을 산 자의 목숨으로 멋대로 입에 올리는 건 가당치 않았다.당신들이 스스로를 죽이고자 한 자의 몸부림이 어떤지 알기나 하냐고, 도무지 내일이 보이지 않는 그 절망의 늪 속에 빠져봤느냐고, 고함이라고 치고 싶었다. 자살은 절망이 들려주는 속삭임이었다. 달콤하기도 하고 끔찍하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떠나 귀 기울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속삭임. 퇴원을 앞두고 생각했다.더는 견딜 수 없을 지경과 대면할 것이다. 그때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되리라. 광인의 얼굴과 짐승의 정신으로 생의 시간을 우격다짐 연장하고 싶진 않다.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면, 죽어 마땅한 이유도 있다. 정신이 괴로워 몸을 망가뜨리고 싶을 때가 있다면, 몸이 괴로워 정신을 버리고 싶은 때도 분명히 있다. 정답이 아닌 줄 알면서도 그 길로 가야 할 경우가 있다.그는 인도를 메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멈칫멈칫, 어깨를 부대끼지 않을 요량으로 몸을 피해 걸음을 옮겼다. (/ pp.20~21)속절없는 기다림 속에서 육체는 이미 망가져 흐물흐물해졌다. 최선의 치료 기회가 다가온대도 감당치 못할 지경이리라. 그러므로 홍 과장이 언급한 각오와 기회는, 단지 기적에 대한 우회적 표현이었다.기적은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당장의 갈증은 씻어주지만 영원한 거처로 삼을 순 없는 노릇이다. 기적에 온전히 매달릴 만큼 삶은 결코 만만치 않다. 오늘 용케 수렁에서 발을 뺐다손 내일 다시 빠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기적으로 오늘의 삶이 반짝이더라도 한 부분, 한순간에 불과하다.알면서도 기적에 매달리고 싶어졌다. 한순간 반짝이는 삶일지라도 홍 과장의 말대로 당장은 열심히 싸워 나가고 싶었다. (/ pp.38)“우린 같은 날 고아가 됐어. 우리 아빠도 그 배를 탔어. 그러니까 너만 혼자고, 너만 힘든 게 아냐.” 처음으로, 인희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인희의 눈동자 속에 내가 들어 있었다. 이내 내 모습은 흐리멍덩해졌다. 인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더니 뚝, 떨어졌다. 나는 잠시도 인희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내 안에 무엇인가 떨어져 아득해지는 느낌에 사로잡힌 채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건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의 한 부분이다. 근거 없는 생각이었지만 꽤 강렬해서 진짜처럼 여겨졌다.인희가 말했다. “너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고 싶어. 너도 나에게 그래 줘. 그때, 그날 깜깜했던 밤길처럼 휘파람을 불어줘. 날 위해 계속 불어줘.”(/ pp.75)살인범에게는 비난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자살실패자를 두려워하는 경우는 없다. 혹 동정의 눈길로 바라보지만 그 안쪽은 어김없이 비난이다.해나는 문득문득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어진다. 눈에 핏발 세우며 악다구니를 써대며.생각이 짧아서 죽으려던 게 아니다. 의지가 약해 빠져서? 천만의 말씀이다. 생각을 했으면 당신들보다 더 했다. 몸과 정신이 너덜너덜해지도록 강렬하게 맞서도 봤다. 살고 싶었지만 도무지 살아지질 않았다. 그리고 당신들이 보지 못했거나 보지 않으려고 했던, 괴롭고 덧없는 인생을 솔직히 인정했을 뿐이다. 그게 비난받을 짓이라면 얼마든지 하시라. 소라 엄마가 침대 시트까지 들춰댄다. 해나는 목소리를 높인다.“나, 보기보다 독해요. 괜한 사람을 건들지 말아요.”(/ pp.92)사는 게 뭐 있어?사는 일에 무엇인가 있다고 믿고 싶어 하는 자들이 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부류도 있다. 그는 어느 쪽일까. 시한부 삶의 그에게 사는 일은 무엇일까. 과연 대단한 무엇이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아등바등 안간힘을 내며 버텨보려는 것일까. 해나는 돌아서 말해주고 싶다. 간곡하게. 제대로 알아듣도록.하루를 더 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당장 비참한 도망자 신세잖아요. 앞으로 나아질 것 같지도 않은데 질질 끌 거 없잖아요. 내가 아저씨라면 간단히 끝내겠어요. 마음 편하게 안녕, 하겠어요.(/ pp.171)“해나야, 난 네가 소리 내어 울었으면 좋겠다.”“한번 울기 시작하면 계속 울어야 될지도 몰라요. 그게 겁이 나요. 울고, 울고…… 영원히 울기만 하는 꼴이라면, 처음부터 울지 않는 편이 옳아요.”“널 울게 만든 이유가 네 눈물을 멈추게 할 이유도 된단다. 넘어진 자리가 바로 일어설 자리인 것처럼 말이다.”“믿지 않을래요. 아저씨를 봐요. 평생 울기만 사람이 바로 아저씨잖아요.”“예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앞으론 다르단다.”“왜요?”“난 이제 눈물을 닦아줘야 할 사람이거든.”“누구의 눈물을요?”네 눈물을 닦아줄 거야. 말은 머릿속에서 아우성치는데 소리가 되어 흘러나오지 않았다. 대답을 기다리던 해나가 쓸쓸한 표정을 짓고는 돌아섰다. 해나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향해 그는 연신 손을 내저었다. 꿈인 듯했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환영을 보는 듯도 했다. (/ pp.203)“살아온 과거를 부정하는 것처럼 힘겨운 일도 없더군. 해나에게 그 일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 그걸 자네가 이해해 줬으면 좋겠네. 내가 떠난 후에도.”“이해 못해.”“그럼 그냥 받아들여줘. 이제껏 부족한 친구에게 그래 왔던 것처럼 말일세.”그는 침대의 등받이를 조절해 누워 등을 돌렸다. 뚝, 눈물 한 방울이 시트 위로 떨어졌다. 검지를 펴 눈물의 흔적을 가리며 그는 말했다. “내가 바라는 건 오직 하나야. 해나가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는 것. 어쨌든 살아보자고 마음먹는 것. 해나가 살겠다고 각오를 한다면, 내일이 생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난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어.”(/ pp.253~254)“아저씨는 중환자예요. 누구랑 싸울 처지가 못 되잖아요.”“곤줄박이라는 아주 작은 새가 있다. 둥지에 솔개가 침입해서 새끼들을 채 가려는 거야. 그때 어미 곤줄박이가 조그만 부리를 휘두르며 솔개에게 달려들었어. 죽을 각오로 싸우니까 결국 솔개가 물러나더라고. 내가 곤줄박이보다야 낫겠지. 아무리 부실해졌다고 해도.”“난 곤줄박이새끼가 아니랍니다.” 그는 해나에게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해나가 잠시 머뭇대다 손을 잡았다. 해나의 표현대로 하자면 개구리 발가락을 닮은, 그에게는 영락없이 자신의 닮은 손이었다. 너는 나의 곤줄박이새끼란다. 위기에 처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지켜야 할 어린 곤줄박이 말이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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